모든 공약을 거부하는 과학적 반실재론

과학적 실재론 및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주장들, 그리고 나의 생각

2024.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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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과학철학은 과학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질문들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이러한 질문들에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과학자들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 그리고 과학이 실재를 나타내는지 등이 포함됩니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이 이런 질문들에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지만, 때로는 과학 이론에 대한 가치 판단이 중요해지는 경우도 존재하기에 이러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저는 평소 과학철학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이번 학기에 〈과학의 철학적 이해〉라는 강의가 열린다는 것을 보고 바로 수강을 결심했습니다. 마지막 과제로는 수업과 관련 있는 주제 하나를 선택해 소논문을 작성하는 것이 주어졌는데, 저는 가장 재미있었던 과학적 실재론/반실재론을 주제로 선택하였습니다. 아래는 제가 작성한 소논문 전문입니다.

본론

1. 과학적 실재론의 정의

과학은 지금까지 세계에 대한 규칙과 법칙들을 말해주는 다양한 이론들을 제시해 왔다. 예를 들어 물리학에서는 모든 원자들이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화학에서는 서로 다른 물질들이 만났을 때 무슨 반응이 일어나고 어떤 물질들이 생기는지 예측한다. 이러한 이론들은 분명 ‘참’인 것 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이론들이 우리의 인식, 정신과 독립적인 ‘실제 세계’를 완벽히 기술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반대되는 두 개의 대답이 바로 과학적 실재론과 반실재론이다.

과학적 실재론은 쉽게 말해 세계는 최고로 잘 정립된 과학 이론들이 주장하는 대로 실제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 입장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는 세 가지의 공약들로 구성되어 있다. 형이상학적 공약, 의미론적 공약, 인식론적 공약이 그것이다. 형이상학적 공약은 과학적 이론의 진술들이 언급하는 대상들은, 만약 그 대상들이 존재한다면, 우리의 인식이나 정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의미론적 공약은 과학적 이론의 진술들이 단지 관찰 가능한 영역에 대한 진술들로 환원될 수 없는 실제 세계에 대한 표현이며 객관적으로 참 여부가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인식론적 공약은 관찰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최선 이론의 기술들은 세계에 대한 지식이며, 최선 이론은 세계의 관찰 가능한 영역 뿐만 아니라 관찰불가능한 영역에 대해서도 (적어도 근사적으로) 참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적 실재론이란 이 세 가지 공약에 대해 모두 동의하는 입장이며, 과학적 반실재론은 이들 중 적어도 하나를 거부하는 입장이다.

이 글에서는 세 가지 공약을 모두 거부하면서 과학적 반실재론을 옹호하는 주장을 펼칠 것이다. 따라서 각 공약에 대한 부가 설명과 함께 각 공약을 반대하는 근거에 대하여 서술한다. 그 과정에서 해킹의 존재자 실재론이나 반 프라센의 구성적 경험론과 같은 입장들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2. 과학적 실재론의 세 공약에 대한 반대 논증

2.1. 형이상학적 공약

먼저 형이상학적 공약에 대해 살펴보자. 이 공약은 과학적 이론의 진술들이 언급하는 대상들은, 만약 그 대상들이 존재한다면, 우리의 인식이나 정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형이상학적 공약에 반대하는 주장들 중에 어떤 것은 이를테면 임마누엘 칸트 견해의 수정판으로 볼 수 있다. 칸트는 “본체”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를 구별하였다. 본 체계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세계이다. 이 세계는 우리가 믿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에 관해 결코 어떤 것도 알 수 없는 세계이다. 현상계는 우리에게 나타나는 대로의 세계이다. 현상계는 인식 가능하지만, 부분적으로 우리의 창조물이다. 칸트는 현상계가 우리의 정신의 구조와 독립해서 실존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피터 고드프리스미스, 《이론과 실재 : 과학철학 입문》, 한상기 역, 서광사, 2014, p.324.)

필자는 형이상학적 공약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식이나 정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재는 과학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포퍼의 견해에 따르면 반증은 과학의 핵심이다. 과학의 모든 이론들은 그 이론들 각각이 내놓는 예측들과 함께 항상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 실험 결과에 따라 그 이론은 예측에 성공하고 살아남거나 때때로 예측에 실패하고 반증되며, 이 과정에서 과학이 발전하게 된다. 이 때 반증은 기본적으로 실험 및 관찰에 의해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실험을 진행하는 과학자들의 신체적 감각이 반드시 관여된다. 따라서 과학적 이론이 설명하는 대상들은 우리의 인식과 결코 독립적일 수 없으며 과학에서 물리적 실재는 우리의 인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만약 인식과 독립적인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적어도 우리들과는 어떠한 인과적 상호작용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상의 (물리적) 실재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즉, 인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재는 과학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형이상학적 공약은 타당하지 않다.

이러한 논증에 대한 가능한 반론을 하나 제시하겠다. 우리의 인식과 독립적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따라서 과학적 맥락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물리적 실재가 존재한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중력 렌즈 현상을 살펴보자. 이 효과에 의하면 무거운 천체 주변에서는 강력한 중력장이 형성되어 공간을 왜곡하게 되고, 따라서 빛이 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우리가 아직 중력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과학자 집단이라고 가정하고, 아인슈타인 십자가를 관찰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여기서 아인슈타인 십자가는 실제로는 80억 광년 떨어진 퀘이사 하나와 4억 광년 떨어진 은하 하나로 구성되어 있지만, 은하의 중력 렌즈 효과로 인하여 퀘이사가 4개로 보여 마치 십자가처럼 보이게 된다. 우리는 아직 중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효과는 분명 우리가 다른 천체를 관찰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중력과 같이 우리의 인식과 독립적이더라도 충분히 과학적 맥락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물리적 실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반론에서 든 예시는 현실적이지 않다. 현대 과학에서 중력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중력을 모르는 사람들을 가정했기에, 이렇게 인식과 독립적이면서도 과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예시를 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은 현재 시점의 과학에서 참이 아니기에 위 반례는 효력을 지니지 않는다. 만약 현대의 과학자들이 중력의 존재에 대해 몰랐다면 이러한 반례를 드는 것이 전혀 불가능했을 것이므로 위와 같은 형식으로는 효과 있는 반론을 펼칠 수 없다. 위의 반례가 효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최신 과학 이론에서조차도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어떤 대상이 ‘중력’의 자리에 대신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하다. 즉 위의 반론에서는 특정 대상에 대해 과학적 맥락에서의 의미 여부를 따지면서 논증에 반례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위 예시에서의 중력처럼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과학적 맥락에서의 의미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면 여전히 그 존재의 물리적 실재성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2.2. 의미론적 공약

두 번째로 의미론적 공약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주장한다. 먼저 과학적 이론의 진술들이 단지 관찰 가능한 영역에 대한 진술들로 환원될 수 없으며, 세계가 실제로 어떠하다고 말하는 표현들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진술들은 세계가 실제로 어떠한지에 따라서 참 또는 거짓으로 객관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의미론적 공약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장은 과학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에 대한 예측을 제공하기 위해 발전했으며, 실제로도 그 임무를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다만 과학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이다. 경험적인 사실들에 대해 올바른 예측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 세계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그러한 주장은 너무나 지나치다. 과학은 실제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없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학이 실제 세계에 대해 무언가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과학 이론은 실용적 성공과 이론의 유용성에 따라 평가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미론적 공약을 거부하는 입장의 한 예시에는 도구주의가 있다. 도구주의는 과학 이론이 세계의 실재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관찰 가능한 현상을 설명하고 관찰 사실들을 체계화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잠시 해킹의 존재자 실재론에 대해 살펴보자. 크게 두 가지 요점을 중심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첫 번째로, 해킹은 특정한 대상의 존재를 믿는 것과 그 존재에 대한 이론적 기술들의 참을 믿는 것을 구분하였다. 그는 이 논의를 심화시키기 위해 두 개의 용어―이론 실재론과 존재자 실재론―을 제시하였다. 이론 실재론은 관찰불가능한 대상/존재자에 대한 이론의 기술들이 참이라고 주장하며, 존재자 실재론은 최선의 물리학이 상정하는 특정한 종류의 관찰불가능한 대상/존재자들이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이론 실재론이 곧 존재자 실재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자명하다. 어떤 이론이 참이라고 믿으면 그 이론이 상정하는 대상의 존재를 믿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특정한 대상의 존재를 믿으면 그 대상에 대한 이론적 기술들이 참이라고 믿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해킹의 대답은 '아니다'이며 그 근거로 실험물리학자들의 실험적 실천 사례를 제시했다. 대다수의 실험물리학자들은 관찰불가능한 대상들의 존재를 확신하면서도 그 대상들에 대한 이론이 문자 그대로 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관찰불가능한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하는 여러 양립 불가능한 이론들에 대해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론을 계산을 위한 도구로 취급함과 동시에 그 이론에서 상정한 관찰불가능한 대상들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실험 물리학이 정합적인 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이론 실재론과 존재자 실재론이 반드시 구별되어야만 한다. 해킹에 따르면 실험 물리학은 과학적 실재론에 가장 강력한 근거를 제공한다. (이언 해킹, 《표상하기와 개입하기: 자연과학철학의 입문적 주제들》, 이상원 역, 한울아카데미, 2005, p.427.)

그렇다면, 이 실험 과학자들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특정한 종류의 관찰불가능한 대상/존재자들은 어떤 것들인지에 대한 물음이 남는다. 이 것이 두 번째 요점이다. 해킹은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조작하고 다룰 수 있는 대상들이 바로 그 존재자라고 말한다. 해킹은 여기서도 두 개의 새로운 용어―실험적 존재자와 이론적 존재자―를 도입한다. 실험적 존재자는 과학자들이 그 존재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현상 이외의 다른 현상을 산출하거나 탐구하기 위해서 조작할 수 있는 존재자를 뜻하며, 이론적 존재자는 실험적 존재자가 아닌 관찰불가능한 존재자를 뜻한다. 예를 들어 전자는 전자총과 같은 기구를 사용해 조작할 수 있으므로 실험적 존재자이고, 반대로 중성자나 블랙홀은 조작이 불가능하므로 이론적 존재자이다.

해킹은 어떤 대상들이 우리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판단을 할 때의 기준에서 근본적인 토대로 삼아야 하는 것은 그 대상들과 우리 사이의 인과적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했다. 이해를 돕기 위한 간단한 예시로 자신의 차고 안에 용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들어보겠다. 이 사람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용과 인과적 상호작용을 한다면 그의 주장은 곧 신빙성을 얻게 된다. 즉 차고 바닥에 밀가루를 뿌려서 용의 발자국을 관찰하든, 적외선 탐지기를 사용해 용이 내뿜는 불을 확인하든, 스프레이를 뿌려 그 형태를 확인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면 용의 실재성은 명확하게 따라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킹은 과학자들이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존재자, 즉 실험적 존재자는 실재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일반적으로 모든 존재자들은 처음에 이론적 존재자에 속한다. 그러다가 기술의 발전 등으로 인해 인위적인 조작이 가능하게 되면 실험적 존재자로 그 지위가 승격된다. 그러면 비로소 이 존재자는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자가 되는 것이다. PEGGY II 라고 불리는 일종의 전자총은 전자로 하여금 실험적 존재자가 되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제 해킹의 존재자 실재론을 기반으로 하여 필자가 제시한 의미론적 공약 반대 논증에 대한 반론을 제시할 수 있다. 위에서 정리한 내용의 전체적인 흐름을 다시 정리하면서 논증해 보겠다. 해킹에 따르면 이론적 진술이 관찰불가능한 대상의 존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조작하고 다룰 수 있는 대상들에 대해서는 실재론을 주장하며, 이를 실험적 존재자라고 부른다. 실험물리학자들의 실험적 실천 사례, 그리고 인과적 상호작용과 실재성의 동연성은 해킹의 견해를 강하게 지지한다. 즉, 실험적 존재자는 실재한다. 필자가 제시한 논증에서는 이론이 상정하는 대상들에 대한 존재성을 인정하지 않기에 해킹의 존재자 실재론과 양립 불가능하다. 따라서 존재자 실재론의 입장에서 필자의 논증은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필자 또한 해킹이 주장한 것과 같이 인과적 상호작용을 실재성의 기준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 기준을 사용해 어떤 이론적 존재자가 실험적 존재자임을 보이는 과정에서 꽤 많은 이론들의 참과 다른 대상들의 실재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1970년대 말 개발된 일종의 전자총인 PEGGY II를 예로 들어보겠다. PEGGY II는 기본적으로 갈륨비소(GaAs)의 진기한 성질―적절한 진동수를 갖는 원형으로 극화된 빛을 받으면 매우 많은 양의 전자를 방출함―에 기반하고 있다. 이 물질을 활용해 전자총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공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세슘과 산소로 이루어진 얇은 막을 결정에 대고 결정 주위의 공기 압력을 낮춰 주면 GaAs에서는 더 많은 전자가 방출된다. 또한 적색광의 레이저와 편광기를 사용해 선형으로 극화시킨 빛을 만든 뒤, 퍼클의 전지(Pockel’s cell)라고 불리는 장치를 사용해 이 빛을 원형으로 극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원형으로 극화된 펄스가 GaAs 결정을 때리고, 선형으로 극화된 전자의 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PEGGY II의 원리이다.(Ibid., p.436.)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입자가 ‘전자’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설명한 이론들이 모두 참이라는 것이 보장되어야만 한다. 즉 존재자의 참을 보증하기 위해서는 그 상호작용을 해석하는 이론의 참을 가정해야 한다. 결국 존재자 실재론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이론 실재론을 가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는 해킹의 이론 실재론과 존재자 실재론을 구분하려는 시도와 모순된다.

2.3. 인식론적 공약

세 번째는 인식론적 공약이다. 이 공약은 관찰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최선 이론의 기술들은 세계에 대한 지식이며, 최선 이론은 세계의 관찰 가능한 영역 뿐만 아니라 관찰불가능한 영역에 대해서도 (적어도 근사적으로) 참이라고 주장한다. 인식론적 공약을 거부하는 견해 중 하나로 반 프라센의 구성적 경험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구성적 경험론은 인식론적 공약은 거부하지만 나머지 두 개의 공약, 형이상학적 공약과 의미론적 공약은 인정하는 입장이다. 이 때 의미론적 공약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관찰불가능한 대상들에 대한 과학 이론의 기술은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문자적 해석이 되기 위해서는 이론의 주장들이 참 또는 거짓인 진술이어야 하며, 이론에 대한 문자적 해석은 그것이 상정한 대상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변화시키면 안된다. 만약 이론이 어떤 대상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문자적 해석은 그것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소 논리적으로 모순인 것 처럼 보이는 부분이 발생한다. 어떻게 과학 이론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서도 실재론을 거부할 수 있는가?

반 프라센에 따르면 과학 이론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과 그것을 참이라고 믿는 것은 별개이기에 가능하다. 왜냐하면 과학의 언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론에 대한 우리의 인식적 태도나 우리가 이론을 구성할 때 추구하는 목표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한 이론이 말하는 바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에만 관련되기 때문이다. 과학의 언어는 문자 그대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결정한 이후라도, 여전히 우리는 좋은 이론이 참이라고 믿을 필요도 없고 사실상 그 이론이 가정한 존재자가 실재한다고 믿을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과학은 경험적으로 적합한 이론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한 이론의 수용은 오직 그것이 경험적으로 적합하다는 믿음만을 포함한다.(Bas. C. van Fraassen, 《The Scientific Image》, Oxford University Press, 1980, p.12.) 이것이 반 프라센이 정식화한 구성적 경험론이다.

보다 더 명료한 이해를 위해 '경험적으로 적합하다'는 표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어떤 이론이 경험적으로 적합하다는 것은 곧 그 이론이 관찰가능한 것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이 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관찰가능한 대상이라는 것은 적당한 조건 하에서 그것이 우리 앞에 놓였을 때 맨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대상을 뜻한다. 예를 들어 목성의 행성이나 공룡과 같은 것들이 관찰가능한 대상이다. 목성의 행성은 우주복을 입고 바로 앞까지 간다면 맨눈으로 볼 수 있고, 중생대로 돌아가 공룡 앞에 바로 서 있다면 공룡도 맨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DNA, 전자와 같은 것들은 관찰불가능한 대상의 예시이다. 또한 맨감각으로 지각하는 주체인 '우리'는 현재 우리 인식 공동체를 가리키는데, 단순히 인간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 외계인과 같은 새로운 주체들이 생겨난다면 새로운 인식적 공동체가 구성되어 관찰가능한 것과 관찰불가능한 것의 기준이 바뀔 수 있다고도 하였다.

필자는 인식론적 공약을 거부한다. 물론 필자의 주장과 구성적 경험론은 형이상학적 공약 및 의미론적 공약에 대한 견해는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동일한 논증을 할 순 없겠으나, 구성적 경험론의 관점에서 인식론적 공약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해 볼 수 있겠다. 우선 관찰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최선 이론의 기술들이 세계에 대한 지식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과학이라는 학문의 목적은 그저 관찰가능한 현상들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뉴턴의 중력 이론은 비록 중력의 본질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것이 없지만, 천체의 운동을 예측하고 계산하는 데는 성공적이었다. 이는 이론이 평가되는 기준은 관찰가능한 현상을 잘 설명하는 정도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론적 용어들이 관찰불가능한 대상들을 성공적으로 지시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 이론적 용어들이 관찰불가능한 대상을 지시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으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론적 용어들이 관찰가능한 현상을 설명하는데 유용한 정보라고 반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쿼크"라는 용어가 실제로 쿼크라는 입자를 지시하는지 여부보다는, 이 용어 및 관련 모델을 사용함으로써 얼마나 입자 물리학 실험 결과를 잘 설명할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주장은 과학적 이론의 검증이 오직 관찰가능한 영역에서의 실험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타당하다.

위와 같은 논증에 대해서는 관찰가능한 대상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우리의 눈에 상이 맺혀 세상을 보게 되는 원리와 광학현미경에서 상이 맺히는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눈이나 광학현미경 모두 기본적으로 렌즈에 의한 빛의 굴절에 의해 물체를 관찰하기 때문이다. 반 프라센의 주장에 따르면 어떤 대상이 적절한 조건 하에서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관찰가능한 대상에 속한다. 그러면 우리의 눈과 비슷한 원리로 세상을 보는 도구인 광학현미경을 사용하여 관찰할 수 있는 대상 또한 관찰가능한 대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반 프라센이 말한 기존의 ‘관찰가능’이 포함하는 대상들과 다른 대상들을 포함하기에 그 경계의 모호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반론에서 맨 눈으로 보는 것과 광학현미경을 통해 보는 것의 중요한 차이를 간과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관찰의 직접성의 여부이다. 맨 눈으로 볼 때는 중간 매개체 없이 직접적으로 대상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지만, 현미경을 통한 관찰은 중간 매개체인 도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물론 두 가지 방법에서 상을 맺는 원리가 동일하기 때문에 관찰이 직접적인지 간접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러한 과학적 원리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러한 원리를 포함하는 이론이 인식적 보증을 설 수 있을 정도로 옳다는 가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필자는 이미 의미론적 공약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이론도 실제 세계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보였으므로 과학적 원리를 통한 정당화는 불가능하게 된다. 결국 우리와 대상 사이에 매개체 없이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에만 관찰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3. 결론

이상으로 필자는 과학적 실재론을 구성하는 세 가지 공약을 모두 거부함으로써 과학적 반실재론을 옹호하는 논증을 펼쳤다.

형이상학적 공약은 우리의 인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재는 과학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 거부하였다. 이에 대하여 우리의 인식이나 정신과 독립적이면서도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과학적 맥락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물리적 실재의 사례를 구성하여 반례를 제시하였으나, 이 반론에서 사용한 논증은 현재 시점의 과학에서 참이 아닌 가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의미론적 공약을 인정하는 것은 과학의 역할을 과대평가 하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거부하였다. 또한 해킹의 존재자 실재론에 따르면 특정한 대상의 존재를 믿는 것과 그 존재에 대한 이론적 기술들의 참을 믿는 것을 구분해야 하며,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조작하고 다룰 수 있는 대상인 실험적 존재자들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살펴보았다. 필자의 논증과 해킹의 존재자 실재론은 이론이 상정하는 대상들의 실재성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가진다. 해킹의 이론에서 존재자의 참을 보증하는 과정이 이론 실재론과 존재자 실재론을 구분하려는 해킹의 시도와 모순임을 보임으로써 필자의 주장이 옳음을 논증하였다.

마지막으로 인식론적 공약의 경우 이론이 평가되는 기준이 관찰가능한 현상을 잘 설명하는 정도여야 한다는 점 때문에 거부하였다. 이는 기본적으로 반 프라센의 구성적 경험론에 기반한 논증이다. 구성적 경험론에 따르면 과학은 경험적으로 적합한 이론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한 이론의 수용은 오직 그것이 경험적으로 적합하다는 믿음만을 포함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관찰가능한 대상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눈이나 광학현미경 모두 빛의 굴절이라는 동일한 원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둘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론도 실제 세계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며, 따라서 우리와 대상 사이에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에만 관찰 가능하다고 할 수 있기에 이 반론은 힘을 잃었다.

과학은 분명 현실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사실을 예측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다. 그러나 실재를 완벽히 설명할 수 있는 만능 도구는 아니다. 이러한 과학적 실재에 대한 논의를 통해 우리는 과학이라는 학문의 본질과 우리들의 인식의 한계를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며, 이를 통해 과학의 발전과 함께 실재에 대한 더 확장적인 논의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이언 해킹, 《표상하기와 개입하기: 자연과학철학의 입문적 주제들》, 이상원 역, 한울아카데미, 2005.
피터 고드프리스미스, 《이론과 실재: 과학철학 입문》, 한상기 역, 서광사, 2014.
Bas. C. van Fraassen, 《The Scientific Image》, Oxford University Press,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