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에서는 1학년에 수학 (또는 고급수학) 강의를 듣습니다. 교재는 김홍종 미적분학 1을 사용하는데 해당 교재는 오피셜 답지가 없기 때문에 문제를 풀더라도 답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서울대 수리과학부의 하승우라는 분께서 만드신 미적분학 풀이집이 있어, 학생들은 공부를 할 때 해당 풀이집을 참고하여 공부합니다.
이 풀이집을 보면서 저도 뭔가 서울대학교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와중, 탐구문제에는 아직 풀이집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탐구문제는 각 장의 마지막에 수록되어있는, 다소 오랜 시간동안 생각해야 하는 심화된 문제들입니다. 마침 제 수학 실력에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기에 탐구문제 풀이집을 만들어 올려 보았습니다.
김홍종 미적분학 1의 탐구문제는 총 9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해서 아래처럼 각 장마다 하나의 파일을 만들어 풀이를 작성하였습니다.
장별로 파일 분리
각각의 문제에서는 풀이와 함께 해당 문제에서 생각할 수 있는 재미있는 사실이나, 따름 정리 등 빨간색 글씨로 밑에 적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jjycjn 같은 수학 블로그를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잡다한 정리들을 좀 많이 알고 있습니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빨간색 글씨를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들어진 풀이집 파일은 Dropbox 서비스를 통해 업로드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션을 사용하여 풀이집을 다운로드 할 수 있는 웹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FAQ도 작성하여 왜 풀이집을 만들었는지, 혼자만의 힘으로 다 풀었는지, 오류를 제보하면 왜 상품을 주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적었습니다.
문제를 보자마자 테일러 전개에서 배운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무한 급수 f(x)=∑n=0∞n!fnxn 은 수렴 반경 내에서 f(n)(0)=fn을 만족합니다. 즉 사상 T:C∞(R)→Rω의 공역에서 뽑은 임의의 원소 (fn)n≥0 에 대하여
f(x)=n=0∑∞n!fnxn
로 잡으면, f(x)는 무한급이고 f(n)(0)=fn이 만족되어 증명이 끝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풀이를 적었을때, 문득 f(x)의 수렴 반경이 R=0 이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fn=nn인 경우에 모든 x=0에 대해 f(x)는 발산하고 따라서 f(n)(0)=fn 인 함수의 존재성을 보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명제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까지 들었으며 결국에는 인터넷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해당 정리는 Borel's theorem으로서 모든 멱급수에 대해 어떤 매끄러운 함수가 존재하여 이 함수의 테일러 급수가 처음의 멱급수와 같다는 정리입니다. 증명의 아이디어는 아래와 같습니다.
우리는 임의의 무한 수열 (cn)n≥0에 대해 원점에서의 테일러 급수가 ∑n=0∞cnxn 인 함수를 찾고자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함수는
f(x)=n=0∑∞cnxn
이지만, 해당 함수가 원점 근방에서 수렴함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증명에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제 smooth bump function ψ를 잡는데, ψ(x)=1(∣x∣≤1),ψ(x)=0(∣x∣≥2) 를 만족하도록 합니다. smooth function 이라 함은 모든 점에서 무한번 미분 가능한 함수를 뜻하고 bump function 이라는 이름은 ψ 함수의 모양이 가운데가 볼록 튀어나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새로운 함수 f(x)를
f(x)=n=0∑∞cnψ(Hnx)xn
와 같이 잡습니다. 단, Hn은 아래를 만족하는 수열입니다. (xk=x⋅(x−1)⋯(x−k+1))
식이 다소 괴랄하게 생기긴 했지만, 아이디어를 이해할 때에 모든 식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cn∣이 커질수록 Hn도 증가하는 것에 집중합시다. f(x)의 계수cnψ(Hnx)는 x≥Hn2 에서 항등적으로 0입니다. 즉 Hn이 크다면 ∣x∣가 조금만 증가해도 cnψ(Hnx)는 금방 0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ψ(Hnx)는 x=0에서도 f(x)가 수렴하도록 해주는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x=0 에서는 여전히 cnψ(Hnx)=cn 이므로, f(k)(0)=k!ck 가 성립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증명 끝.
동서 방향과 남북방향으로 금이 쳐져 있는 한 없이 넓은 좌표평면 위에 주사위가 놓여 있다. 아래 그림의 왼쪽에 있는 주사위를 동서 방향 또는 남북 방향으로 여러번 굴려서 오른쪽 주사위의 상태로 옮기려면 어떻게 굴리면 될까? (한 번 굴릴 때에는 주사위의 한 모서리를 따라 90◦ 회전시킨다.)
탐구문제 7장 24번 그림
일단 주어진 문제 상황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주사위를 정의해야합니다. 위치는 2차원 벡터인 (x,y)로 정의합니다. 지문의 왼쪽 주사위는 (0,0), 오른쪽 주사위는 (2,0) 입니다. 그리고 주사위의 상태를 3차원의 벡터인 (u,r,f)로 정의합니다. 단, u,r,f는 각각 주사위의 위(up), 오른쪽(right), 앞(front)의 숫자입니다. 예를 들어 지문의 왼쪽 주사위는 S=(1,3,2) 입니다.
다음으로는 주사위의 굴림을 정의해보겠습니다. x 방향(오른쪽)으로 한번 굴리면, 상태 S=(u,r,f)는 S′=(7−r,u,f)가 됩니다. 주사위의 숫자를 1,2,3,4,5,6이 아닌 1,2,3,−3,−2,−1로 본다면 (즉, mod7로 본다면) x 방향의 굴림은 (u,r,f)↦(−r,u,f)이므로 선형사상이 됩니다. 따라서
로 정의하면 −x,y,−y 방향으로의 굴림을 행렬을 사용해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R−x=Rx−1,R−y=Ry−1 입니다.
이제 다시 문제로 돌아가서, 처음 상태 S=(1,3,2) 에서 마지막 상태 S′=(2,−3,1) 로 가기 위해서는 행렬
R=0010−10100
이 곱해져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행렬 Rx,R−x,Ry,R−y들의 곱으로 R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단, Rx의 개수에서 R−x의 개수를 빼면 2가 나와야 하고, Ry의 개수와 R−y의 개수는 같아야 합니다. 그래야 최종적으로 위치 (2,0)에 주사위가 멈출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sagemath를 사용해 재귀호출로 해가 존재하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재귀호출의 깊이를 n=2 부터 n=14 까지 늘려봤는데도 해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코딩이 잘못되었나 하면서, 최종 주사위의 위치가 (2,0)이라는 조건 x == 2 and y == 0을 없앤 뒤에 다시 재귀호출을 돌려보았습니다. 그리고 해가 존재할 경우 (x, y)를 출력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위치들을 좌표 평면에 나타내었더니 신기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n=5일 때 주사위의 위치
위 그래프는 n=5일 때 최종 상태가 S=(2,−3,1)인 주사위들의 위치입니다. 한 칸씩 떨어지면서 일정한 패턴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점들은 모두 x+y의 홀짝성이 같은 점들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최종 상태가 S=(2,−3,1) 이면서 위치가 (2,0)에 있는 주사위를 찾는 것이므로, 해당 주사위는 존재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심증을 가지게 해줍니다.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임을 알게 되면, 수학에서는 굉장히 자주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불변량을 찾는 것입니다.
주사위의 불변량
주사위에서 1,2,3이 적힌 면이 만나는 점의 위치에 따라 주사위의 특성 C를 정의합니다. 위 그림의 검은색 점 위치에 있을 경우 C=0, 그렇지 않을 경우 C=1로 정의합니다. 이 때 어떤 주사위를 굴려 얻은 모든 주사위에 대해서 C+x+y의 홀짝성은 같습니다. 증명은 간단한데, 주사위를 한번 굴리면 C도 1만큼 변하고 x+y도 1만큼 변해서 결국 C+x+y의 홀짝성은 일정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지문의 왼쪽 주사위는 C+x+y=1+0+0=1, 오른쪽 주사위는 C+x+y=0+2+0=2 으로 홀짝성이 달라 불가능합니다. 증명 끝.
사실 방금의 증명은 저희가 위에서 발견한 신기한 명제, 상태가 S인 주사위를 굴려 상태가 S′인 주사위를 얻고자 할 때 x+y의 홀짝성이 같은 점들에서 가능하다는 명제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사실을 조금 더 깔끔하게 쓰면 아래와 같습니다.
위치 P=(x,y), 상태 S=(u,r,f)를 가지는 주사위를 D=(P,G) 라고 하자.
그리고 sumP:=x+y로 정의하자. D를 굴려 얻은 주사위 중에서 D′=(P′,S)가 존재한다는 것은 sumP≡sumP′(mod2)와 동치이다.
탐구문제 풀이 작성은 6월 13일에 시작해서 7월 1일에 마쳤는데, 중간에 여행갔던 것을 제외하면 2주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중간에 어렵고 귀찮은 문제들도 많아서 힘들었는데 이렇게 답지를 완성하고 나니 매우 뿌듯합니다. 미적분학 1 교재를 마스터 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2학기에도 열심히 공부하여서 미적분학 2 탐구문제 풀이집을 만들 수 있는 실력을 갖추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